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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연애

일요일에만 허용되는 나태함을 한껏 만끽하며 기숙사 침대 위에 드러누워 평화로운 오전 시간을 즐기고 있던 이명헌은 건너편 방의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문득 양말을 하나 더 사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기억해냈다. 지금 바로 따라 나가면 동오에게 부탁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얼른 슬리퍼를 꿰어 신고 뛰어 내려갔지만 이미 최동오는 기숙사 문을 나서 언덕 아래로 빠르게 걸어 내려가고 있었다. 하여튼 쓸데없이 발만 빠르다니까뿅. 투덜대며 다시 방으로 올라가던 그는 기적같이 두 번째 방법을 생각해내고는 아직 인기척이 들려오는 방문을 두드렸다.

 

"성구 안에 있냐 뿅."

"왜."

 

조금 느리게 문을 열고 나오는 정성구는 간만에 사복 차림을 하고 서 있었다. 그래봤자 품이 큰 후드티에 면바지 정도였지만 학교와 체육관, 기숙사만 오가는 운동부 남학생치고는 그래도 나름 제법 멋을 냈다고는 할 수 있을 모양새였다. 특히 산왕 티셔츠를 입지 않은 부분에 가산점 5점 부여해드립니다 뿅. 여튼 조금 초조한 얼굴로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빨리 말하라는 눈치의 성구를 보며 명헌은 아주 간단하게 요점만 전달했다.

 

"올 때 양말 하나만뿅."

"하얀거? 하나면 돼?"

"하나면 충분뿅."

 

명헌이 몸을 틀어 길을 터주자 성구는 바로 문을 나서 성큼성큼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돈은 이따 와서 영수증 주면 계산뿅. 명헌이 성구의 등 뒤에 큰 소리로 덧붙이자 성구는 알겠다는 듯이 손만 흔들어 보였다. 명헌은 잠시 그가 사라진 계단 쪽을 바라보며 도로 누우러 들어갈지, 다른 친구들과 잡담이라도 나눌지 고민하다 아래층 다용도실로 털레털레 내려갔다. 이미 명헌보다 먼저 내려와서 tv를 보던 현철과 옆에서 빨래를 개키던 낙수가 그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동오랑 성구는 아까 나가더라?"

"뿅."

"근데 걔들 어차피 같이 나간다 아니야? 맨날 따로 나가네."

"낸들 아나. 내외하는갑지."

 

솔직히 우리가 모르는 척 해주는 거지 지들 사귀는 거 모르는 사람 여기서 얼마나 있다고. 낙수가 티셔츠를 탁탁 손으로 털어내며 중얼거리는 말에 명헌과 현철은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올 뻔한 것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조금 많이 돌아가긴 하지만 산왕공고에서 환승 없이 한 번에 시내까지 갈 수 있는 버스는 한 대 뿐이었는데 그나마도 배차 간격이 30분에 달하는 가혹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 말인즉 한번 놓치면 30분을 기다리거나 환승이 필수인 다른 버스를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명헌이가 갑자기 붙잡아놓고 말을 시키긴 했지만 다행히 성구는 버스가 오기 3분 전에 버스 정거장 도착에 성공했다. 이미 10분 전에 먼저 나와서 기다리며 정거장 의자에 앉아 있던 동오는 이제 왔냐는 듯이 흘끔 보기만 하더니 아무 말 없이 몸을 조금 움직여 성구가 앉을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둘은 나란히 앉아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잔뜩 경직된 자세로 앞만 바라보다가 정거장에 도착한 버스가 그들 앞에 멈춰 설 때에서야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버스는 사람이 거의 없이 한산한 편이라 둘은 2인석을 어렵지 않게 차지하고 앉을 수 있었다. 성구가 버스 손잡이를 잡은 채 먼저 앉으라는 듯이 동오에게 턱짓하자 동오는 아무렇지도 않게 창가 쪽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고 성구도 자연스럽게 그의 바로 옆에 나란히 앉았다. 운동부 청소년답게 덩치가 큰 그들에게는 자리가 다소 좁은 편이라 아까 버스를 기다릴 때보다 좀 더 밀착해서 앉은 둘은 여전히 앞만 보며 말없이 앉아 있다가 두 정거장 정도 지나고 나서야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이따 점심때 어디 갈까. 아까 명헌이가 양말 사달래. 언제? 나 나오기 직전에. 오늘은 그럼 나이키 매장 앞에서 먹어야겠네. 아냐, 너 먹고 싶은거 먹어. 성구는 슬며시 한 손을 내려 잠시 더듬대다가 동오의 손끝을 잡아 쥐었다. 아이, 진짜. 동오는 겉으로는 질색하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성구를 노려보는 척 했지만 그러면서도 못 이기는 척 그 손을 마주 쥔 채 창밖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마 부끄러워서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모양인데, 사실 아닌 척 하면서도 감정을 못 숨기고 빨개진 귀 끝이 제일 귀엽다는 것은 동오는 모르고 성구만 아는 사실이기 때문에 성구는 굳이 말리지 않고 오늘도 부끄러움에 달아오른 동오의 귀와 목덜미나 관찰하기로 했다.

 

 

 

 

 

산왕공고의 학생들이 시내에 외출을 나올 경우 먹는 것들은 솔직히 다 거기서 거기다. 시골에 속하는 이 동네에서 학생들의 지갑 수준에 맞춰 먹을 것이라곤 솔직히 맛도 없는 주제에 서비스가 개판이라고 소문이 자자하지만 결국 시내에서 하나뿐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가곤 하는 독과점의 악명이 자자한 모 패스트푸드 전문점, 온 사방에서 아저씨들이 귀찮도록 아는 체를 하고 말을 걸어대는 찌개백반이나 중국집, 산왕의 빡빡머리 농구부만 보면 떡볶이와 순대를 산더미처럼 쌓아 올려주는 농구광 사장님 내외가 운영하시는 분식집 정도. 가끔 집에서 보내주는 용돈을 받은 지 얼마 안 된 소년들은 영화관 맞은편에 있는 조금 오래된 경양식당에서 모듬까스를 시켜다 놓고 칼질이나 하며 허세를 부려보기도 하지만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여튼 오늘 그들이 고민 끝에 선택한 곳은 중국집이었다. 어차피 결국엔 평소처럼 간짜장 곱빼기로 시킬 생각이면서 메뉴판을 노려보는 최동오의 진지한 얼굴을 구경하는 것은 상당히 재미가 있다. 그리고 정성구는 오늘도 국물을 뺏어 먹을 것이 분명한 최동오를 위해 삼선짬뽕을 곱빼기로 먹을지 짬뽕과 볶음밥을 먹을까 조금 고민 중이다. 아예 탕수육 세트로 먹을까, 잠깐 생각해보지만 용돈을 아낄 필요도 있고 '부먹'을 싫어하는 동오 때문에 시키기도 애매하니 군만두 추가로 선회하는 쪽이 좋아 보인다. 중국집에서 어쩌다 탕수육을 먹을 때마다 어차피 결국은 다 먹을 거면서 소스는 따로 주면 좋겠다느니 먹다 보면 튀김옷이 눅눅해지는 것이 싫으네 마네 투덜대는 동오에게 그렇게 부먹이 싫으면 짜장면도 찍먹으로 먹으라고 놀리는건 정성구의 정해진 패턴이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진한 눈썹을 불쾌한 듯이 까딱이며 이거랑 그거는 다르지, 진지하게 짜증내는 것 역시 최동오의 뻔한 패턴. 솔직히 말해서 정성구는 이 한심하고 식상한 말장난을 하고 싶어서 굳이 중국집을 가자고 할 때가 많다. 동오에게는 당연히 비밀이다.

 

주문하고 음식이 나올 때까지 둘 사이에서 딱히 대화가 오가는 일은 없었다. 성구는 턱을 괸 채 멍하니 길거리를 구경하며 다음 동선을 생각하고 동오는 단무지만 오독오독 씹으며 성구의 등 뒤에서 흘러나오는 tv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뭐 재밌는 거라도 하냐고 성구가 물어보면 고개를 내저으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고 tv만 빤히 보고 있는 얼굴이 왠지 얄미워 괜히 볼을 쿡 찌르니 동오가 그제서야 눈썹을 찡그리며 성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간만에 둘이 나왔는데 이쪽 좀 봐주라, 성구의 장난스러운 말에 동오는 금방 머쓱해진 얼굴로 괜히 성구의 손을 제 앞으로 끌어당겼다.

 

"핸드크림 좀 많이 발라야겠다. 왜 이리 손이 까칠해."

“네 손이 그래서 그런 거 아냐? 나 어제도 밤에 자기 전에 제대로 바르고 잤는데."

"몰라. 하여튼 손 피부 관리 좀 해."

"얼씨구, 지는 관리 안 해도 잘생겼다 이거지."

"왜 또 사람을 놀리고 그래애-"

 

남보고 손이 거칠다고 놀리지만 그러는 본인의 손도 똑같은 운동부 종사자답게 거칠어진 정도는 만만치는 않아서 건조한 피부끼리 맞닿아 마찰되는 기분이 제법 뻣뻣하니 이상하면서도 그 끝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기분이 좋아 굳이 손을 빼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이따 핸드크림도 하나씩 같이 살까. 동오가 성구의 손을 한참 주무르고 맞대며 손 크기도 비교해보고 조용히 놀고 있는 동안에 어느새 사장님이 주문한 음식들을 들고 다가왔다. 반 박자 정도 늦은 감은 있었지만 동오는 얼른 맞잡은 손을 떼고 탁자 밑으로 쏙 밀어 넣은 채 아무 일도 없었던 것 마냥 사장님께 고개만 꾸벅 숙여 인사를 했다. 성구도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며 젓가락을 꺼내 동오에게 내밀며 다른 손으로는 짬뽕을 제 앞으로 조금 바짝 당겨왔다. 하는 짓이 귀여워도 오늘의 짬뽕 국물만은 양보하지 않을 셈이다.

 

 

 

 

명헌이 부탁했던 양말도 사고 나면 평소처럼 오락실에 가서 이런저런 게임을 즐길 단계다. 동오는 성구의 옆에 서서 인형뽑기 기계 속에 가득한 인형을 심드렁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최근 들어 인형뽑기 기계에 푹 빠진 정성구는 함께 외출을 나올 때마다 인형뽑기 기계가 보이면 일단 한번쯤은 꼭 도전해보곤 했다. 뭐, 실력은 괜찮긴 했는데 저게 그렇게까지 재밌을 일이냔 말이다. 여튼 오늘도 성구는 못난이 건빵 쿠션을 뽑아보겠다며 눈에 불을 켜고 기계를 조작하느라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성구의 말에 따르면 이런 인형류는 몸체에 굴곡이 없고 밋밋해서 잡아내기 힘들지만 그만큼 도전할 맛이 있다는데, 그 말 그대로 평소 훈련이나 중간고사에서조차 볼 수 없는 엄청나게 집중한 얼굴로 기계만 뚫어져라 보고 있는 모습을 보니 좀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동오는 이제 집게의 움직임은 되었고 성구의 얼굴이나 구경하기로 했다. 거의 뽑기 직전에 올라가버린 집게를 보며 아쉬운 듯이 탄성을 내지르는 정성구의 참담한 표정이 어찌나 재밌던지 이번에는 동오가 먼저 동전을 꺼내 성구에게 내밀었다. 이번 한번만 하면 진짜 뽑는 거 아냐? 남자친구의 응원 아닌 응원에 힘입어 또다시 기계와의 재승부에 도전한 성구는 드디어 아래로 툭 떨어지는 건빵 쿠션을 보며 허공으로 주먹을 내질러가며 환호성을 내뱉었다.

 

"누가 보면 올해 처음 주전이라도 딴 줄 알겠다."

"진짜 내가 농담 아니고 이게 주전 경쟁보다 더 힘든 것 같애."

"어쭈."

"왜 또 태클이야, 왜."

 

투닥투닥 말다툼을 벌이면서도 동오가 쿠션을 끄집어내 품에 안겨주자 성구는 금방 다시 환해진 얼굴로 받아들더니 그대로 옆구리에 꼭 끌어안았다. 이번 전리품은 기숙사에 가면 또 누구의 것이 되어 다용도실을 굴러다닐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못생긴 쿠션 하나에 이렇게나 순수하게 기뻐하는 얼굴은 저만 알고 있는 비밀이라 생각하니 왠지 조금은 부끄러우면서도 즐거워져서 동오도 마주 보며 함께 웃어주었다.

 

 

게임을 조금 더 할지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할지 눈짓으로 물어오는 동오를 보며 성구도 잠깐 어쩔까 고민에 빠졌지만 곧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아,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 치더니 그대로 동오의 손을 잡아끌고서 다시 길거리로 나섰다. 핸드크림을 사려고 했던 것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하마터면 또 오락실에서 잔돈을 다 써버리고 길거리에서 핫도그나 사먹고 들어갈 뻔 했다고, 성구는 지금이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동오는 성구가 손을 잡고 이끄는 대로 순순히 따라왔지만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화장품 로드샵 문을 열기 직전에 갑자기 우뚝 멈춰 섰다. 왜 그러냐는 성구의 의아한 표정에 조금 붉어진 얼굴로 손을 슬며시 빼내니 그제서야 여태 손을 잡고 시내를 활보한 것을 깨달은 성구도 조금 부끄러워져서 고개를 숙이며 매장에 발을 들여놓았다. 어서 오세요, 직원은 잠시 고개를 들어 인사를 하더니 남학생 둘이 서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필요하신거 있으면 부르시라는 직원의 심드렁한 무관심이 오히려 반가워 둘은 잠시 가게를 둘러보다가 핸드크림 코너 쪽으로 성큼 다가섰다.

 

"레몬향에 화이트닝 효과... 이거 발라볼까?"

"손만 하얘져서 뭘 한다고... 으엑, 이거 향 너무 강하다."

"어우, 진짜네. 지난번에 코튼향은 난 좀 별로더라고. 딸기향 해볼까."

 

딸기향 크림을 짜서 발라보더니 맛있겠다며 감탄하는 동오를 보며 너는 아까 밥도 그만치 먹어놓고 그런 소리가 또 나오냐. 입으로는 장난스럽게 놀리면서도 성구는 동오의 손을 잡고 제 눈앞까지 들어 올려 손등에서 은은하게 느껴지는 딸기향을 맡으며 비슷한 생각을 했다. 손도 하얀 애가 딸기향까지 나니까 진짜 입에 넣어보고 싶네. 물론 입 밖으로 내면 등짝이 터지고도 남을 말이라 속으로만 삼키고 향이 강하긴 하다는 평가만 돌려주었다. 한참동안 이것저것 샘플을 여닫으며 손에도 발라보고 향도 맡아보던 둘이 결국 고른 것은 제일 무난하고 은은한 느낌의 카모마일 향이었다. 마침 1+1 행사상품이라는 핑계로 둘이 같이 골라서 나눠 가지긴 했지만, 아마 딱히 그런 행사가 없었어도 같은 것을 샀을 것이 뻔했다. 이제 또 한동안 농구부 친구들은 왜 둘이 같은 향이 나냐고 코를 킁킁대며 놀리기에 바쁘겠지만 사은품 주는 거 나눠 썼다고 둘러대야지. 나름 친구들의 눈을 피해가며 비밀 연애 중이라지만 또 가끔은 이런 식으로 커플 아이템 하나쯤 갖춰놓고 쓰면서 은근히 흘리는 것도 또 연인끼리의 은밀한 재미인 셈이다.

 

 

 

 

돌아가는 버스도 다행히 사람이 붐비지는 않았던 덕에 둘은 아까처럼 버스 뒤쪽에 자리잡고 앉을 수 있었다. 시끌벅적한 시내를 돌아다니는 일은 생각보다 피곤한 일이었던지 의자에 앉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품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적당히 기분 좋게 흔들리는 버스에 아무 말도 없이 나란히 앉아 무거운 눈꺼풀만 깜빡이던 둘 중 먼저 졸음에 패배한건 동오 쪽이었다. 성구는 제 어깨에 기대어 얹혀 오는 무게감을 느끼며 그를 밀어내는 대신 그 위에 자신의 머리를 슬쩍 기대고 눈을 감는 쪽을 택했다. 관자놀이에 조금 눌려오는 까슬한 머리의 감촉이 약간은 간지럽긴 하지만 기분이 나쁠 정도는 아니었다. 이따 저녁 먹고 자기 전에 머리 깎을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해줘야 할 것 같은데, 아주 짧게 생각하다가 성구도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뒤에 학생들, 학교 다 왔어!"

 

얼마나 잤을까, 버스기사가 부르는 소리에 놀라 후다닥 눈을 뜬 둘은 창문 너머의 학교를 보자마자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을 보며 빙글빙글 웃는 어른들의 시선에 조금 부끄러워져 얼굴이 달아오르긴 했지만 감삼다! 큰 소리로 버스기사에게 인사하는 것은 잊지 않고 후다닥 가방을 챙겨 내리자마자 버스는 다음 역으로 떠나갔다. 나갈 때처럼 따로 들어갈까 어쩔까 고민하던 둘이었지만 슬슬 귀찮음이 더 커진 참이라 같이 올라가기로 하고 함께 기숙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교문 앞까지만 손을 잡고 가자며 불쑥 손을 내밀어오는 성구의 모습에 동오는 잠깐 당황했지만 금방 손을 맞잡고 나란히 언덕길을 걸어 올랐다. 아까 시향 테스트를 해보며 발랐던 핸드크림 덕에 조금 촉촉한 감이 있는 손바닥에 약간의 땀이 배어들었지만 둘 다 오히려 조금 더 힘을 주어 서로의 손을 강하게 맞잡아 본다.

 

"오늘도 재밌었다."

"으응."

"다음 달에 나갈 때는 오락실 가지 말고 영화관 가 볼까."

"뭐 개봉하나 그때 보고."

 

다음 달에도 당연히 둘이 함께 외출을 한다는 전제 하에 이뤄지는 대화였지만 둘 다 그 부분은 굳이 지적하진 않는다. 오늘도 해는 동쪽에서 떴고 해가 지면 곧 달이 뜰 것처럼 둘의 연애전선은 지극히 평화롭고 당연한 일상의 감정들이 되어 계속 이어져나가는 중이다. 그렇게 말없이 한참 손을 잡고 언덕을 오르다가 교문을 지나자마자 동오는 마무리 신호라도 보내는 듯이 성구의 손을 힘주어 꼭 잡더니 금방 스르르 빠져나가고는 조금 느린 걸음으로 몇 걸음 뒤로 쳐져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성구는 일부러 보폭을 조금 더 넓게 걸으며 혼자 빠르게 기숙사를 향해 걸어 올라갔다.

 

오늘도 비밀 연인의 알리바이는 완벽하다.

적어도 손에서 같은 향을 풍기며 일렬로 언덕을 오르는 둘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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